화분을 바라보다가
우리 집에는 다양한 화분들이 있다. 화분 속 식물들은 자신에게 맞추어진 그릇(?) 안에서 싹을 틔우기도, 꽃을 피우기도 한다. 화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우리 마음속에도 화분이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나의 상상 속 화분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화분 이야기
"모든 사람들에게는 본인이 심을 수 있는 씨앗 하나와 화분 하나가 주어진다."
나의 상상 동화 속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화분이 있다. 무엇을 심을지는 그 화분의 주인,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씨앗도 하나씩 주어진다. 사람들의 씨앗은 모두 다르며, 씨앗의 수명은 주인의 생명과 같다. 씨앗을 가꾸면 식물이 되지만, 식물을 뽑으면 다시 그 씨앗이 된다. 씨앗을 어디에 심을지 역시 주인인 자신이 결정하지만, 하나의 화분에는 하나의 씨앗만 심을 수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화분은 본인의 씨앗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도록, 맞춰서 제작된 화분이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무관심 또는, 무지함으로 자신의 화분에 다른 것이 자라게 될 수도 있다.
행복과 진정한 행복
동화 속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화분과 씨앗을 가꾸어간다. 이들은 "씨앗을 가꾸는 것"을 "행복"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씨앗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을 "진정한 행복"이라 이름 붙였다.
본인의 씨앗이, 본인의 화분에 심겨 있다면 원할 때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의 화분에 자신의 씨앗이 심겨 있다면 그렇지 못하다. 타인의 화분에 씨앗을 심고 대신 키우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화분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여, 타인의 화분에 자신의 씨앗을 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자신의 씨앗뿐이기에 그들은 행복을 위해 타인의 화분에 찾아가야만 했다. 씨앗의 주인은 뒤늦게 식물을 옮겨보지만, 뽑는 순간 씨앗이 되어버린다.
어떤이는 자신의 화분에 자라던 식물이 자신의 씨앗이 자라난 게 아님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 씨앗을 심어놓은 타인을 탓해보기도, 씨앗인 척 땅에 박혀있던 조약돌을 던져봐도, 변하는 건 없다.
불행의 등장
사람들은 본인의 씨앗이 자라고 있지 않음을 알아차리는 것을 "불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불행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이 여태 들여온 노고와 시간들이 헛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좌절과 포기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생각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한 노인의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앞에 한 노인이 걸어왔다. 그 노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화분 속 식물을 뽑았다. 식물은 다시 씨앗이 되었고, 노인은 그 씨앗을 다시 화분에 심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 화분에 내 씨앗이 심겨있지 않음을 알아낸 것은 '불행'이 아니네. 이제부터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조상들은 내 씨앗이 커다란 식물이 되는 것을 진정한 행복이라 부르지 않았네." "자신의 씨앗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음을 "진정한 행복"이라 불렀다네"
뺏기지 않는 행복
자신의 씨앗을 자신의 화분에 가꾸는 사람은 원할 때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행복을 어떠한 종점에서가 아니라, 씨앗을 가꾸는 여정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뺏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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