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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상 ◆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by ✪‿✪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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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보며 앉아있는 사람

당신을 이해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말은 흔히 들어보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 자체를 이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이해하는 것일까.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 선택을 이해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때로는 새로 알게 된 누군가의 경험들이, 지금 그 사람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스스로를 이해한다

남들을 이해하는 것은 둘째 치고, 자기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허다하다.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할 때, 매번 그것이 이해가 되는가?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심지어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공감은 원할 때가 있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남들이라도 인정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만약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설렘을 이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을 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해와 사랑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 사실에 근거하여 상대방의 타당성을 판별하는 '인정'과 달리, '이해'는 상대의 실수마저 보듬고 기다려줄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 사람이 옳다가 아니라, 그 선택을 한 상황을 이해한다는 말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타인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다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 쉽다. 왜냐하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기점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공감"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공감의 과정이 없이 타인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람은 "관찰"에만 의존하게 된다. 관찰로 형성된 이해는 사실관계과 인과관계를 따지는 '인정'으로 끝나기 쉽다. 자신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의무가 아닌 선택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상대방을 이해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이해가 가능하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없이,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이의 입을 강제로 벌려 음식을 집어넣는 것과도 같다. '내가 너를 이해해줄게"가 아니라, "너를 알아가며 이해하고 싶어"가 올바른 시작점이다. "너를 사랑해줄게"가 아닌 "너를 사랑하고 싶어"와 같은 사랑 고백과도 같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관계는 상대의 존재를 알 아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

모든 것이 결국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도 결국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 중 하나이다. 스스로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은, 상대에게서 볼 수도 있고, 또 세상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신을 이해하는 재료로 쓰일 수 있다.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자신을 얼마큼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크기가 달라진다.

우주와 세포

현미경으로 탐구할 수 있는 세포의 세계와, 망원경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우주의 세계는 굉장히 닮아있다고 들었다. 크기는 다르지만, 그 구조와 형식은 유사하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전부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큰 일이다. 우주가 무한한 만큼 자신의 내면도 무한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무한한 세상을 날마다 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설레고 또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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